담임목사 칼럼

대강절(待降節)을 맞이하여 - 기다림

Author
admin
Date
2018-12-04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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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 보면 마음먹는 대로 술술 풀릴 때도 있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탱해 주는 것이 바로 “기다림”이 아닐까…? “기다림”이란 참 아름다운 말이다. 인생을 “기다림”이라고 말한다. 작게는 컴퓨터를 켤 때 부딩을 기다리는 짧은 기다림에서부터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마음 졸이며 결과를 기다림, 결혼 날짜를 잡아 놓고 결혼식을 기다리는 신혼의 기다림… 돌이켜보면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신호등이 바뀔 때까지, 버스나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리고, 건강검진 결과가 나오기까지, 새로 오픈한 가게에서 손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 입사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며, 말없이 떠난 누군가를 기다리며, 우리는 끊임없이 기다리면서 살아간다.
오시다 기요카즈가 쓴 “기다린다는 것”이라는 작은 신간이 나와서 온라인(Online-Books)로 읽었는데 거기에서 저자는 “인생의 모든 결정적 전환점에 ‘기다림’이라는 마음의 정거장이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저자는 부모들이 “아기가 태어나기까지의 기다림, 걸음마를 떼고 옹알이를 할 때까지의 기다림, 그 아기가 어엿한 성인이 돼 한 사람의 몫을 하기까지의 기다림, 그가 사랑을 찾고 직업을 찾고 인생의 진정한 소명을 찾을 때까지의 기다림… 이처럼 생생한 기다림들이 인생의 피와 살을 이룬다”고 했다. 정말 기다림이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삶의 동력이다. 만일 기다림이 없다면 삶의 온기가 식어지고 인내도 사라지고 소망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 모든 기다림을 멈추는 순간, 삶은 끝나고 만다. 기다림의 의미와 가치를 알면 우리 삶의 잃어버린 불씨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다림이 끝나면 인생도 끝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다림을 버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기다림에 지치지 말아야 한다. “기다린다는 것”에서 저자 “오시다 기요카즈”는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의 유명한 간류지마 결투의 한 장면을 소개한다. 사무라이 “무사시”는 대결상대 “고지로”에게 일부러 결투의 약속시간을 어김으로써 기다림에 지쳐 잔뜩 긴장한 고지로가 더 이상 긴장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게 했다는 것이다. 사무라이 “고지로”는 사나이 답게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림에 지친 그는 끝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이것이 무사시의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무사시는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심리전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검객 “고지로”는 기다림의 대결에서 실패했다.
어느 책에 보니까 “기다림”을 프랑스어로 “attente”(아탕트)라고 한다고 했다. 이 단어에는 “기다림”이라는 뜻도 있지만 “설렘”이라는 뜻도 포함된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난 기다릴 만큼 기다렸어”, 그래서 “이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이런 식으로 마음의 한계를 정해버린다면 그동안의 모든 기다림은 무효로 끝나고 말 것이다. 기다림은 설렘이다. 설렘은 나를 지탱하게 만든다. 설렘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설렘이 없는 기다림은 기다림이 아니다. 설렘은 봄의 새싹이 돋아나는 것과 같다. 봄향기 속에서 새싹이 돋아날 수 있는 것은 춥고 긴 겨울을 참고 기다렸기 때문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것이 왔을 때 감격과 환희는 그만큼 크고 기쁠 것이다.
지난 주일부터 성탄절 주일 전까지 4주간을 대강절(待降節)이라고 부른다. 대강절(Advent)의 의미는 “간절히 기다리던 분이 오다”, 또는 “기다리던 분이 도착한다”는 라틴어 “Adventus”(에드벤투스)에서 유래되었다. 교회를 비판하는 어떤 논객이 쓴 글에 보니까 “오늘날 성탄절을 제일 먼저 알리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백화점을 비롯해 장사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심지어 교회조차 성탄절 행사를 왜 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뜻이다. 라디오 방송과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롤, 구세군의 종소리, 빨간색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산타와 오색찬란한 장식들과 함께 어느덧 사람들은 성큼 다가온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크리스천들에게는 크리스마스 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대강절(待降節)이다. 대강절에 해당되는 영어의 “Advent”는 라틴어 “ad(to)” 와 “ventire(come)”의 합성어이다. 수천년 동안 기다리던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영어로 “the Advent”라고 쓰면 그리스도의 초림을 나타내고,”Advent”로 쓰면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낸다. 이미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재림(Advent”을 기다리고, 아직도 믿지 않거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The Avdent”(초림)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므로 대강절은 태초부터 종말까지 이어지는 역사 중에서 최대의 사건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서막인 예수님의 탄생을 미리 준비하여 자신을 가다듬는 절기이다. 그리고 다시 오실 메시아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는 강림절(降臨節)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간수들의 기록에 의하면 희안하게도 크리스마스와 새해 사이에 사망자가 두배 이상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가혹한 노동조건이나 갑작스런 전염병 때문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집에 돌아갈 수 있겠지”, “새해가 되면 풀려날 수 있겠지”하면서 가느다란 기다림의 희망에 매달려 살아가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용소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 그런 소박한 기다림을 만들어 냈고, 기다리던 성탄절이 오고 새해가 와도 그 실낱같은 기다림의 희망이 사라지자 생체시계조차 멈춰버린 것이다. 그래서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기다림을 포기했기 때문에 사망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렇듯 어떤 기다림은 삶을 지탱해주는 간절한 버팀목이다. 기다려야 한다.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당신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다린다면 그 기다림이 당신을 지탱시켜 주고 이기게 해 줄 것임을 꼬옥 믿고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