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신년) 새날에는 새로운 사람으로

Author
admin
Date
2019-01-07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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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이야기로 시작해 보려고 한다.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이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달아나다가 풍랑을 만나 바다에 던져졌다. 거대한 물고기가 와서 그를 통째로 집어 삼켜 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고통을 당하다가 회개하고 다시 살아난 유명한 선지자이다. 요나의 경험은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책임이 있다. 군대의 사령관이 보낸 전령(傳令)과 같다. 전령은 지휘관의 명령을 신속하게 전해야할 막중한 직책이다. 그렇게 막중한 책임을 진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불복종했다. 전령(傳令)이 제 맘대로 도망을 친 것이다. 하나님은 “니느웨”로 가서 저들에게 임박한 심판을 예고하라고 했지만 요나는 그것을 거역하고 반대편의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피 행각을 했다. 보통 겁없는 사람이 아니다.
“니느웨”는 고대 앗수르(Assyria)제국의 수도로 메소보다미아 지방에 있어서 최고의 도시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시리아의 전신이다. 상업이 번성했고 외국과의 활발한 교역으로 사치와 퇴폐 풍조가 만연하였다. 하나님은 바로 이 타락한 니느웨성을 구원하시려고 요나를 보내어 경고 메시지를 전하려하셨다. 그런데 요나는 이스라엘을 항상 괴롭히는 악한 적국 니느웨가 당연히 멸망해야 마땅한데 어떻게 그들을 구원시키려고 한단말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도망을 쳤다.
이게 오늘 날 우리의 모습이 나닐까? 하나님께서 뭐라 말씀하시든 내 맘대로, 내 판단대로, 내가 옳은 대로 행동하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과 같다. 다들 나름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내가 옳은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바로 “요나”이다.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려고 뱃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욘2:3) 그런데 하나님은 도망치는 요나를 맘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배를 타고 도망가는 바다에 풍랑을 일으켜 배를 파선해서라도 요나를 굴복시키려 하셨다.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욘2:4) 선원들이 두려워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졌다.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으로 내려가 누워 깊은 잠에 들었다. 아무튼 요나는 보통 똥뱃장이 아니다. 어떻게 그런 상항에서 깊은 잠에 골아 떨어질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이한 사랑을 보게 된다. 어떤 사랑인가? 깊은 잠에 들어 있는 요나에게 풍랑을 일으켜 깨우려고 하셨다. 풍랑을 일으킨 것은 요나를 일깨우는 고차원적 사랑의 채찍이었다. 요나의 가는 길에 풍랑을 일으킨 것은 요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요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전령(傳令)들이다. 우리는 다 “요나”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른 길로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못된 길을 갈 때에 풍랑을 일으켜 가는 길을 막는 것은 그들을 미워서가 아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었는데도 어긋난 길로 도망쳐 갔기때문에 대풍을 일으켜 막으신다는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지난 해 우리가 만난 어려움도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깨우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었을까? 과연 풍랑을 일으키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인가?라고 반문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신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사랑의 채찍을 드신다고 하셨다(히12:6). 풍랑을 보내지 않았다면, 타고 있는 배를 흔들지 않았다면, 요나가 과연 하나님께로 되돌아갔을까? 요나가 조용히 순종했을까? 그럴 사람이라면 애당초 도망을 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깨달아야할 것이 있다. 내 자아가 강할수록, 내 주장이 강할수록, 더 많은 많은 훈련을 하신다는 사실이다. 자아가 강하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강하면 깨어지는 고통의 시간이 길어진다. 모세가 얼마나 강한 사람이었는가? 40년간의 연단을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시키셨다. 야곱이 얼마나 자아가 강한 사람이었는가? 20년간이라는 긴 세월동안 야곱보다 더 강하고 쎈 삼촌 라반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면서 훈련을 받으며 깨어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틈만 나면 자기맘대로 살려고 했다.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삿17:6/21:25) 살려고 했다. 그래서 430년동안이나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시키셨다. 그래도 말을 안들으니까 70년 동안이나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훈련을 시키셨다. 그래도 말을 안들으니까 예수님 승천하신지 30년 만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없애버리시고 거의 1900이 지난 다음, 1948년에 지금의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셨다. 아시다싶이 이스라엘처럼 전쟁과 고난을 많이 당하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시다. 자기 백성을 옳은대로 이끌어가시려는 관심과 애착과 지극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요나에게 풍랑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사랑! 이것을 믿음의 눈을 가지고 우리는 다 깨달았으면 한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이 불순종하고 다른 길로 가면 반드시 풍랑을 일으켜서라도 돌아서게 하신다. 왜? 채찍이 그치고 간섭이 끝날 때 이미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버리실 때는 “상실한 대로 내버려두신다.”(롬1:28) 아직도 채찍을 당하고 아픔을 겪는다면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아래 있음을 알자. 하나님이 포기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지금 아픔과 고통이 더 심하시지 않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셔서 붙잡고 계신다는 증거가 확실하다. 만일 어떤 연유로 당신이 믿음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다가 지금은 교회 다니는 것을 포기했는가? 그래서 교회를 다닐때보다 아무일 없이 모든 일이 훨씬 더 좋아졌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채찍이 그치고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을 한번쯤 해 보시면 어떨까?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이다. 더 늦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하나님께서 “요나”를 통해서 당신에게 전하고자하신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