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Author
admin
Date
2021-05-14 18:49
Views
603
인생을 오무(五無)라고 했다.
“인생에 없는 것이 다섯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철이 없고, 젊어서는 바빠서 정신이 없고, 중년이 되면 쉴 틈이 없고, 늙어지면 형편없고 결국 죽어 존재가 없어지더라”는 것이다.
말세지말(末世支末)에 그렇게 인생을 헛되게 살지 말라는 뜻이다. 남을 미워하고 험담하고 불평하면서 귀한 시간들을 다 허비해서는 안 된다. 나이가 들어도 철없는 인생, 늘 바빠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일 때문에 쉴 틈이 없이 살면 결국 인생은 어느새 늙어 존재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이 시대를 “마지막 때”라고 말한다.
성경에서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말씀한다. 마지막 때는 종말심판의 뜻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마지막이라는 말은 오히려 소망적인 개념이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하여 영원한 영생(永生)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말은 심판주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새로운 세상을 준비해 주셨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라”(요3:18)고 하셨기 때문이다.
오늘은 우리 인생에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 마지막 순간이다. 오늘이 늘 내 생애의 마지막 기회처럼 인식하고 살아야 할 때이다. 지구의 종말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말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믿든지 아니 믿든지 모두 종말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가까왔다”는 말은 헬라어로 “엥기켄”(ηγγικεν)로서 “무언가 급히 가까이 잡아 당긴다”라는 뜻이다. 한국민속 놀이의 “줄다리기”에서 안간힘을 쓰고 서로 잡아당기다가 힘이 강한 한 쪽이 힘이 약한 쪽을 급하게 잡아당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정말이지 세월이 급히 우리를 잡아당긴 것만 같다. 오늘도 만물의 마지막이 우리를 잡아당기고 마지막을 향하여 끌려 가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을 주의 깊게 잘 보고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1970-1980년대에 한국의 경제부흥이 한창일 당시였다.
어느 날 한강의 성수대교가 무너질 때 일어났던 어떤 회사원의 웃을 수 없는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다. 강남의 아파트 단지의 이웃 집에 살면서 같은 회사를 다니던 어떤 젊은이 두 사람이 아침 일찍 출근길에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69번 버스가 아파트 앞 정류장에서 막 출발하려고 했다. 그래서 한 사람은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려가서 가까스로 매달려 버스를 탔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은 달려가다가 포기하고 버스를 타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세히 보니까 그 버스는 69번이 아니라 96번이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탄 친구는 69번을 타야 하는데 마음이 급한 나머지 96번을 69번으로 착각하고 잘 못 탄 것이었다. 그런데 조금있다가 친구가 타고 간 96번 버스가 하필 성수대교를 지나다가 다리가 무너지면서 승객들과 함께 물 속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무슨 말인가? 인생을 그냥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급할수록 시대를 주의 깊게 잘 보고 준비하고 대처해야 한다. 내가 지금 타고 가는 인생길이 69번인지 96번인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신앙생활이 문제가 아니라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 믿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잘 믿어야 한다. 예배 드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
세상이 급진적으로 변하고 있다. 오늘의 현상은 도덕이 무너지고 있는 시대이다. 도덕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 우선주의로 살아 간다. 자기 중심으로 판단하고 계산한다.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오늘의 현상은 가치관이 사라지고 급히 사라지고 있다. 민주주의 가치, 가족중심의 가치, 결혼의 가치가 무너져 내린다. 거짓이 진리를 가로막고, 사람들이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마지막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리스도인은 갈 곳이 있고 가지 말아야할 곳이 있다. 그것이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구별된 성도이다.
그것이 “복 있는 사람”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1:1-3)
한 마디로 구별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은 만나야 할 사람이 있고 만나지 말아야할 사람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가야할 곳이 있고 가지 말아야할 곳이 있다. “거룩”이란 말은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죄악으로부터 구별된 사람이다.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사람이다. “성도(聖道)”란 거룩하게 구별된 길을 걷는 사람이다. “교회”를 헬라어로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라고 하는데 이는 세상으로부터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교회는 곧 성도들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을 따라 흘러가는 사람이 아니다.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