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부활절을 맞아: 진정한 부활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Author
admin
Date
2017-04-1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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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맞이하여: 진정한 부활은 먼저 나로부터

인간은 죽지않기를 바란다. 요즘 120세 인생을 맞아 건강하게 오래살려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어
느 때 보다 높다. 사슴의 눈물을 먹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세익스피어의 희곡 “마음 내키는 대로”에 보면 사슴이 죽을 때는 반드시 눈물을 흘리는데 그 눈물을 받아 먹으면 만병이 통치되어 오래 산다는 대사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조금 더 오래살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늙어 가는 길 막을 수 없다. 죽음을 누가 막으랴! 옛시인 정철은 인생의 허무함을 이렇게 읊었다.
“한 손에 막대잡고 한 손에 가시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하였더니 백발
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결국 사람들은 무덤 앞에서 죽는 것이 슬퍼 모두 눈물을 흘린다. 이 죽음의 고통은 인류 역사가 시작
된 이래 가장 큰 숙명의 과제였다. 아담 이후 인류의 종착역은 무덤이었다. 무덤은 인간 최대의 절망
이었다. 그러던 인간 역사에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숙제인 사망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가장 기쁜 소식이다. 죽기를 무서워하는 인간들에
게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야말로 최대의 복된 소식이 아니겠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가 사흘만에 다시 부활 하심으로 우리의 원수 사망을 완전히 정복하셨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 내신지라”(딤후 1:10)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의 C. S. 루이스 교수가 했던 중요한 말이 있다.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라. 그러면, 땅을 덤으로 얻게 된다. 땅을 바라보고 살아라. 그러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얼마나 의미심장한 말인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면 이 땅에서도 소망이 있다는 말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시겠다”(마 6:33)는 말과 뭐가 다른가?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육체가 강건하리라”(요삼 2)는 말과 뭐가 다른가? 우선순위에 대한 말씀이다. 비록 현재 이 땅에서 살지만 인간의 목표와 최종 목적은 하늘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부활(復活)은 그리스도인의 우선 순위이며 최종 목표(目標)이며 최고의 목적(目的)이다. 부활은 역사적 실재사건이다.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회생(回生)도 재생(再生)도 환생(還)도 아니다. 두 가지 부활이 있음을 아는가? 어떤 사람은 영멸부활(永滅復活)로 어떤 사람은 영생부활(永生復活)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부활은 거룩한 신(神)처럼 되는 영생부활이다. 예수님처럼 영화롭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받은 사도 요한은 장차 우리가 예수님처럼 될 실재적인 사건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요일 3:2)
“부활”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아나스타시스”(ἀνάστασις)는 두 단어의 합성어이다. ”한 가운데로, 중앙에, 절대자의 복판에”의 뜻을 가진 “아나”(ἀνά)와 “이룩하다, 옆에 가까이 서다, 확고한 마음을 가지다, 권리를 포기하지 않다”는 뜻을 가진 “히스테미”(ἵστημι)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정리하면, “부활”(ἀνάστασις)의 성경적 의미는 “하나님의 뜻과 계시의 말씀을 깨달아 새롭게 되어 똑바로 서서 죽음에서 일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우뚝 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이란 내 맘대로 살다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그때 부활을 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다. 변화된 삶이 요구된다. 오늘의 삶이 진정한 부활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새롭게 거듭난 사람으로서 옛 것을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부활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다”고 하셨다(요11:25).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님처럼 죽음에서의 부활을 믿으며 소망하는 소위 부활신앙을 가져야 한다.
유명한 철학자 톨스토이는 본래 신앙이 없었으나 인생 말년에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한다. “부활”이라는 책에 보면 자신의 변화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제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저의 모든 삶이 변화되어, 이전에 제가 바라던 것을 바라지 않게 되었으며, 반면에 제가 결코 전에 바라지 않았던 것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저의 눈에 악으로 보였던 것이 선으로 보였으며, 선으로 보였던 것이 악으로 보였습니다.” 그것이 부활의 대작을 쓰게 된 동기라고 한다.
그렇다. 부활을 믿으면, 그 인생이 바뀌게 되어 있다. 가치관도 바뀌고 생활도 바뀌게 된다. 주님의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기 전까지는 세상 중심으로 살았다. 입으로는 “주님을 끝까지 따르겠다.”고 장담했지만, 실상 그들의 마음은 세상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 붙잡히자, 그들은 제각기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던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뵙고 난 후에는 그들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삶의 방식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었다. 땅의 중심이 하늘 중심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진정한 부활신앙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