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날을 맞아: 어머니 나의 어머니
Author
admin
Date
2017-05-14 01:34
Views
1557
(May 12, 2017 자 Korean Journal Houston 실은 칼럼)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를 읽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그들 뒤에는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이 있다. 조선의 대표적 학자였던 율곡 이이에게는 신사임당이 있었고, 김구 선생에게는 곽낙원 여사가 있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어린 시절에 어머니로부터 받은 영향이 그의 삶을 지배했고, 성 어거스틴 역시 훌륭한 기도의 어머니 모니카 여사가 있었다. 그런가하면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선지자였던 사무엘에게도 기도의 어머니 한나가 있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어머니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가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있고,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자녀들의 인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수년 전에 읽었던 책 중에 "10대를 이렇게 도우세요" 라는 책이 있는데, 그 속에 "부모가 보여주는 대로 산다" 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자녀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의 어께 넘어에서 배우면서 성장한다. 우리가 잘 아는 우화에 "어미 게와 새끼 게"가 있지 않는가? 항상 옆으로 삐딱하게 걷는 새끼를 본 어미 게가 “똑바로 걸으라”고 나무라며 시범을 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게걸음이 어디 가겠는가? 엄마게도 역시 옆으로 삐딱하게 걷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 그 자녀를 유대인으로 인정해 준다. 부모의 영향과 가정교육의 힘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자녀들이 잘못을 나무라지만, 사실 그 아이들의 언행을 유심히 살펴보면 부모와 너무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그리고 신앙 생활에 있어서 자녀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특별히 예배생활이나 기도생활, 그리고 우리의 언행에 있어서 자녀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알면서도 그렇지 못한 것은 우리의 부족함일게다.
성경(마 15:21-28)에 보면 한 가나안 여인에게 흉악한 귀신이 들려 고생하고 있는 딸이 있었다. 사랑스럽고 귀엽기만 하던 딸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어느날 갑자기 이상한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지옥 같았을까? 그런데 이 어머니는 자신을 던지는 희생과 딸을 사랑하는 놀라운 모성애로 딸을 치유했음을 볼 수 있다. 어머니는 자식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체면을 버린 사랑이다. 흉악한 귀신들린 딸을 두고 가슴 아파하던 어머니는 예수님이 그 지방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조롱과 비방이 있었다. 어머니는 예수님을 향하여 처절하게 외쳤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내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나이다.”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역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이렇게 소리를 지를 수 있겠는가? 대개는 쉬쉬하며 숨기고 싶을 것이다. 더구나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고, 자기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다고 소리지를 수 있겠는가? 어머니는 체면을 버렸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렇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할 때 자존심을 버린다.
그때 여인이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며 간청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셨다. 한 마디로 그 여인을 개처럼 취급한 것이다. 이쯤되면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자기 자식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다시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라고 대답한다. 다시 말하면 "주님! 옳습니다. 저는 개와 같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먹지 않습니까? 주고 남은 부스러기라도 좀 주십시오." 라고 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과 사랑을 보시고 그 딸을 치유해 주셨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이요, 위대한 사랑이다. 부모의 희생을 먹고 사는 것이 자식들이다. 부모는 온갖 역경 속에서도 자식 잘되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심순덕의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를 읽고 다 같이 어머니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홀로 대충 부엌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차가운 수돗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자기는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 피가 맺혀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의 모습..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시다고...
외할머니 보고 싶으시다고,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줄만 알았던 나..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를 읽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그들 뒤에는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이 있다. 조선의 대표적 학자였던 율곡 이이에게는 신사임당이 있었고, 김구 선생에게는 곽낙원 여사가 있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어린 시절에 어머니로부터 받은 영향이 그의 삶을 지배했고, 성 어거스틴 역시 훌륭한 기도의 어머니 모니카 여사가 있었다. 그런가하면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선지자였던 사무엘에게도 기도의 어머니 한나가 있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어머니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가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있고,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자녀들의 인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수년 전에 읽었던 책 중에 "10대를 이렇게 도우세요" 라는 책이 있는데, 그 속에 "부모가 보여주는 대로 산다" 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자녀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의 어께 넘어에서 배우면서 성장한다. 우리가 잘 아는 우화에 "어미 게와 새끼 게"가 있지 않는가? 항상 옆으로 삐딱하게 걷는 새끼를 본 어미 게가 “똑바로 걸으라”고 나무라며 시범을 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게걸음이 어디 가겠는가? 엄마게도 역시 옆으로 삐딱하게 걷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 그 자녀를 유대인으로 인정해 준다. 부모의 영향과 가정교육의 힘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자녀들이 잘못을 나무라지만, 사실 그 아이들의 언행을 유심히 살펴보면 부모와 너무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그리고 신앙 생활에 있어서 자녀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특별히 예배생활이나 기도생활, 그리고 우리의 언행에 있어서 자녀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알면서도 그렇지 못한 것은 우리의 부족함일게다.
성경(마 15:21-28)에 보면 한 가나안 여인에게 흉악한 귀신이 들려 고생하고 있는 딸이 있었다. 사랑스럽고 귀엽기만 하던 딸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어느날 갑자기 이상한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지옥 같았을까? 그런데 이 어머니는 자신을 던지는 희생과 딸을 사랑하는 놀라운 모성애로 딸을 치유했음을 볼 수 있다. 어머니는 자식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체면을 버린 사랑이다. 흉악한 귀신들린 딸을 두고 가슴 아파하던 어머니는 예수님이 그 지방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조롱과 비방이 있었다. 어머니는 예수님을 향하여 처절하게 외쳤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내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나이다.”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역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이렇게 소리를 지를 수 있겠는가? 대개는 쉬쉬하며 숨기고 싶을 것이다. 더구나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고, 자기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다고 소리지를 수 있겠는가? 어머니는 체면을 버렸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렇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할 때 자존심을 버린다.
그때 여인이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며 간청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셨다. 한 마디로 그 여인을 개처럼 취급한 것이다. 이쯤되면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자기 자식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다시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라고 대답한다. 다시 말하면 "주님! 옳습니다. 저는 개와 같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먹지 않습니까? 주고 남은 부스러기라도 좀 주십시오." 라고 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과 사랑을 보시고 그 딸을 치유해 주셨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이요, 위대한 사랑이다. 부모의 희생을 먹고 사는 것이 자식들이다. 부모는 온갖 역경 속에서도 자식 잘되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심순덕의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를 읽고 다 같이 어머니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홀로 대충 부엌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차가운 수돗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자기는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 피가 맺혀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의 모습..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시다고...
외할머니 보고 싶으시다고,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줄만 알았던 나..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