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죽음을 이기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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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Date
2025-05-04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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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메시지: 부활은 죽음을 이기는 능력이다
오래 전에 동부지역에서 목회를 하던 때였다.
한국에서 상류사회에서 권력을 오랫동안 누리고 살던 가족이 이사를 왔다.
그 사실을 안 교인들이 전도를 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그들은 철저하게 이웃의 도움받는 것을 거절하며 문을 걸어 닫고 살았다.
백만 달러의 고급저택에서 살면서도 외부와 접촉을 철저히 차단했다.
이 노부부는 교민들과 교제도 없고 교회도 다니지 않고 종종 고급차량들과 손님들이 드나들곤 했지만 얼마가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건물관리인이 발견하고 신고를 하였는데 사인이 부부 모두 아사와 폐렴으로 오래 전에 이미 죽어 부패되었다고 보도되었다.
이웃의 증언에 의하면 그 부부는 한인들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급기야는 아내가 먼저 병이 들자 남편은 스스로 몸을 못 이겨 함께 굶주린 채 굶어 죽어갔다.
호의를 거절할 만큼 교만하고 한때 높은 권세 아래 살았지만 그는 정말 헛되고 어리석은 인생으로 끝을 마쳤다.
인간은 죽지 않기를 바란다.
중국의 진시황제는 영원히 살고 싶어 신하들에게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 헤매도 이 세상에 불로초를 찾지 못한 신하들은 왕궁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진시황제는 세월이 흐른 뒤 신하들을 기다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오래 살려고 서양 사람들은 사슴의 눈물을 먹는다는 설이 있다.
왜냐하면 세익스피어의 희곡 “마음 내키는 대로”에 보면 사슴이 죽을 때는 반드시 눈물을 흘리는데 그 눈물을 받아먹으면 만병이 통치로 오래 산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 말을 믿고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조금 더 오래 살 수는 있어도 늙는 길 막을 수 없다.
옛 시인 정철은 인생의 허무함을 이렇게 읊었다.
“한 손에 막대잡고 한 손에 가시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하였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이것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길이다.
옛날에 좀처럼 울지 않기로 유명했던 알렉산더 대왕도 세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한번은 그가 페르시아 원정을 갔을 때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묘비를 보고 울었는데 “인생이 아무리 한때 부귀영화를 누려도 결국은 한개의 무덤밖에 남기는 것이 없으니 허무하구나”
하고 눈물을 흘렸다.
두번째는 인도의 인더스강 가에서 인더스강만 건너가면 인도를 정복할 수 있는데 지친 부하들이 따라주지 않자 다시 돌아가야만 했을 때 거기서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또 한번은 그가 부하들과 모래사장에서 씨름을 하다가 넘어졌는데 넘어진 그 자리에 남은 그의 몸의 흔적을 보고 울었다고 한다.
그를 넘어뜨렸던 부하가 하도 무안해서 왜 우시냐고 물었더니 부하에게 져서 원통하여 운 것이 아니라, 모래 사장에 넘어진 자신의 몸 자국을 보고 내가 지금은 이렇게 큰 나라를 가지고 부귀 권세를 누리지만 나도 죽으면 한 평의 땅속에 묻혀 버리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인생이 얼마나 무상하냐고 하며 울었다고 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얼마 후 3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하고 말았다.
이 죽음의 고통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큰 숙명의 과제였다.
아담 이후 무덤은 인간 최대의 절망이며 어둠이며 인류의 마지막 종착역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인류의 숙제인 사망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지키는 부활절이 우리에게 가장 기쁜 날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심으로 이 사망을 완전히 정복하셨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 내신지라”(담후1:10)
주님의 부활은 사망권세를 이기신 승리이시며 주님의 승리는 곧 우리의 승리이다.
왜? 예수님과 연합하여 죽었으니 예수님이 부활할 때 마땅히 우리도 연합하여 부활한 것이다.
우리의 소망 가운데 최고의 소망은 부활의 소망이다.
우리 주님이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
우리는 첫 열매에 달라붙은 부활의 열매들이다.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죽음이다.
그러나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부활의 능력은 능력 중에 최고의 능력이다.
오래 전에 동부지역에서 목회를 하던 때였다.
한국에서 상류사회에서 권력을 오랫동안 누리고 살던 가족이 이사를 왔다.
그 사실을 안 교인들이 전도를 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그들은 철저하게 이웃의 도움받는 것을 거절하며 문을 걸어 닫고 살았다.
백만 달러의 고급저택에서 살면서도 외부와 접촉을 철저히 차단했다.
이 노부부는 교민들과 교제도 없고 교회도 다니지 않고 종종 고급차량들과 손님들이 드나들곤 했지만 얼마가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건물관리인이 발견하고 신고를 하였는데 사인이 부부 모두 아사와 폐렴으로 오래 전에 이미 죽어 부패되었다고 보도되었다.
이웃의 증언에 의하면 그 부부는 한인들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급기야는 아내가 먼저 병이 들자 남편은 스스로 몸을 못 이겨 함께 굶주린 채 굶어 죽어갔다.
호의를 거절할 만큼 교만하고 한때 높은 권세 아래 살았지만 그는 정말 헛되고 어리석은 인생으로 끝을 마쳤다.
인간은 죽지 않기를 바란다.
중국의 진시황제는 영원히 살고 싶어 신하들에게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 헤매도 이 세상에 불로초를 찾지 못한 신하들은 왕궁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진시황제는 세월이 흐른 뒤 신하들을 기다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오래 살려고 서양 사람들은 사슴의 눈물을 먹는다는 설이 있다.
왜냐하면 세익스피어의 희곡 “마음 내키는 대로”에 보면 사슴이 죽을 때는 반드시 눈물을 흘리는데 그 눈물을 받아먹으면 만병이 통치로 오래 산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 말을 믿고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조금 더 오래 살 수는 있어도 늙는 길 막을 수 없다.
옛 시인 정철은 인생의 허무함을 이렇게 읊었다.
“한 손에 막대잡고 한 손에 가시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하였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이것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길이다.
옛날에 좀처럼 울지 않기로 유명했던 알렉산더 대왕도 세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한번은 그가 페르시아 원정을 갔을 때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묘비를 보고 울었는데 “인생이 아무리 한때 부귀영화를 누려도 결국은 한개의 무덤밖에 남기는 것이 없으니 허무하구나”
하고 눈물을 흘렸다.
두번째는 인도의 인더스강 가에서 인더스강만 건너가면 인도를 정복할 수 있는데 지친 부하들이 따라주지 않자 다시 돌아가야만 했을 때 거기서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또 한번은 그가 부하들과 모래사장에서 씨름을 하다가 넘어졌는데 넘어진 그 자리에 남은 그의 몸의 흔적을 보고 울었다고 한다.
그를 넘어뜨렸던 부하가 하도 무안해서 왜 우시냐고 물었더니 부하에게 져서 원통하여 운 것이 아니라, 모래 사장에 넘어진 자신의 몸 자국을 보고 내가 지금은 이렇게 큰 나라를 가지고 부귀 권세를 누리지만 나도 죽으면 한 평의 땅속에 묻혀 버리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인생이 얼마나 무상하냐고 하며 울었다고 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얼마 후 3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하고 말았다.
이 죽음의 고통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큰 숙명의 과제였다.
아담 이후 무덤은 인간 최대의 절망이며 어둠이며 인류의 마지막 종착역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인류의 숙제인 사망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지키는 부활절이 우리에게 가장 기쁜 날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심으로 이 사망을 완전히 정복하셨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 내신지라”(담후1:10)
주님의 부활은 사망권세를 이기신 승리이시며 주님의 승리는 곧 우리의 승리이다.
왜? 예수님과 연합하여 죽었으니 예수님이 부활할 때 마땅히 우리도 연합하여 부활한 것이다.
우리의 소망 가운데 최고의 소망은 부활의 소망이다.
우리 주님이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
우리는 첫 열매에 달라붙은 부활의 열매들이다.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죽음이다.
그러나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부활의 능력은 능력 중에 최고의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