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복음이 요구하는 것

Author
admin
Date
2017-09-1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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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요구하는 것
"서부전선 이상 없다", 10대 후반에 읽었던 소설로 기억된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 치열할 때 독일의 십대 애국소년 일곱명이 전쟁에 자원입대를 한다. 3년 동안 소년들은 독일군이 되어 용감하게 싸우다가 여섯 친구들이 총탄에 죽고 겨우 한 사람만 남는다. 전투가 한창이던 날, 이 소년 주인공이 적군과 마주서서 무자비하게 기관총을 난사한다. 한참 기관총을 쏘다 보니까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다. 웬일인가 하고 살펴보았더니 적군들이 다 죽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아직도 비참하게 신음하며 죽어가는 참혹한 현장을 둘러 보다가 고통하며 죽어가는 적군을 부등켜 안고 처절하게 절규한 장면이 있다. "이제 나는 비로소 당신들이 나와 똑 같은 인간임을 깨달았어요. 당신들이 죽은 것처럼 나도 죽을 수 있고, 당신들의 어머니가 당신들을 전쟁터로 보내면서 괴로워했듯이 내 어머니가 지금도 애태우며 나를 기다리고 있고, 당신들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듯이 나에게도 있고, 당신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죽어가는 것처럼 나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소. 당신들이 용서를 바라는 것처럼 나도 용서받아야 할 사람이란 말이요.”라고 절규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누가 누구를 비방할 수 있겠는가? 비난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복음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선언한다. 죄를 범하였다는 말은 법을 어겼다는 뜻이다. 법을 완전히 지키면 의롭게 되고 법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불의가 된다. 로마서 3:23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선언하신다. 그렇다면 그 죄는 어디서 왔는가? 아담의 죄로 인하여 모든 인류는 부패한 죄성을 타고 났다.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지으면 “정녕 죽으리라”(창 2:17)는 최초의 법을 정하였다. 이건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이었다. 그래서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심판의 법칙을 적용하셨다. 이것이 인간의 운명이었다.
로마서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 아담의 범죄함로 인하여 죄가 처음으로 이 세상에 들어 왔다. 누가 아담과 하와에게 죄를 가져다 주었는가? 마귀였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에 따라 사망이 들어왔다. 사망이 온 인류를 주장하게 되었다. 이 사망권세를 마귀가 가지게 되었다. 마귀는 죽이는 일을 한다.
그래서 “마귀의 일을 없애려고”(요한1서 3:8)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셨다. 마귀의 일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아담과 하나님의 관계를 깨뜨렸고 지금도 가르고 쪼개는 일을 한다. “사망의 권세 잡은 자”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어린양의 대속의 제물이 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롬 8:1)고 선언하신다.
이로인하여 성령님은 구원받은 죄인을 변호하신다. 무죄함을 밝히고 죄없음을 변호하는 일을 한다. 무죄석방하는 것이 목적이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변호사의 일을 하신다.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하는데 헬라어로 “παράκλητος”(parakletos)라고 하는데, “Para”는 “곁에서”라는 뜻이고 “Kletos”는 “돕다, 위로하다, 변호하다, 부름받다, 증거하다”라는 뜻이다. 성령님은 우리 곁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예수님의 피로 정결하게 되어 의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마귀의 정죄를 차단하고 변호하고 위로하고 도와 주시도록 보내심을 받으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는 검사와 변호사의 주장을 종합하여 최종판결을 하는 일을 한다. 유죄이든 무죄이든 법에 따라 판결한다. 새로운 법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회개하는 모든 자들을 깨끗케 하고 용서받고 의롭게 된다”는 법이다. 이 내용은 요한복음 8장에 잘 나타나 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재판에 회부하였다. 그들은 고소자들이다. 그들을 향하여 재판관이신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의 논고를 통해서 판결을 하신다. 첫째는 고소자들을 향하여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고 하셨다. 두번째로는 피고인을 향한 최종판결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11) 재판관은 죄많은 여인을 향하여 “우 카타크리마”(무죄선언)을 해 주셨다. 이것이 은혜의 복음이다. 용서받은 우리들, 은혜입은 우리들, 사랑받은 우리들에게 무어라고 말씀하시는가? “다시는 가서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신다. 무슨 말인가? 구원받은 자의 삶의 문제이다. 구원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라고 말씀하시는가? “더 이상 죄 짓지 말고 살라”고 하신다. 회개했으면, 용서받았으면, 이제 죄에서 돌아서라는 뜻이다. 용서를 받았으면,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었으면, 이제는 과거의 죄의 습관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이다. 회개하였으면 회개한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무조건 용서를 받았으면 용서하면서 살아야 한다. 값없이 은혜를 입었으면 값없이 은혜를 나누며 살아야 한다. 값없이 사랑을 받았으면 값없이 사랑을 베풀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복음의 요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