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Paradox(패러독스)

Author
admin
Date
2015-07-28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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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7: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Whosoever tries to keep his life will lose it, whosoever tries to lose his life will preserve it.)
이것이 이순신 장군이 말한 “사측생 생측사” (生則死 死則生)이다.

이런 것을 복음의 패러독스(paradox)라고 한다.
영어의 패러독스(paradox)는 모순 속에 진리를 함축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기독교는 역설(패러독스)의 종교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핵심인 십자가야말로 역설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그 안에서 죽어야만 사는 역설이다.
죽어야만 사는 것이 기독교다.
예수님께서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자. 내가 거기서 죽으리라고 하셨다.
그랬더니 제자들은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고 말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죽어야 산다”고 하신 것이다.
또한 성경은 낮은 자가 높아지고, 약할 때 곧 강해지며,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 있고, 어린아이와 같아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한다.
버려야 얻을 수 있고 비워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살고자하면 죽고 죽고자하면 사는 것이 기독교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라는 말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라는 말씀 등은 모두 역설의 진리를 강조하는 말씀들이다.
변하지 않는 진리는 세상과 반대의 길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이 땅이라면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보다 더 높으시다.
그것이 진리의 길이다.

요즘 ‘갑질’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갑을관계에서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갑 을 병 정 등으로 계약 당사자를 표시한다.
계약서 상 보통 갑이 주문자 또는 계약에서 중요한 우위를 차지하는 당사자가 된다.
그래서 ‘갑질하다’고 할 때 갑의 권리나 권력으로 약자의
을이나 기타 병 정 등에게 부당한
힘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인터넷에선 갑의 무한 권력을 꼬집는 ‘슈퍼 갑’, ‘울트라 갑’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갑처럼 군림하려하는 사람을 일러 ‘갑질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동물들의 세계를 보면, 여지없는 갑질 세상이다.
사자들의 사회를 보면 수사자는 자기가 사냥을 하지 않았음에도 자기가 왕이라 생각해 그 누구도 사냥한 고기를 먼저 먹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만일 끝까지 수사자의 뜻을 어기고 사냥한 고기를 먹는 사자가 있다면 결국 물어 죽이고 만다.
이처럼 동물의 사회는 거의가 갑질이 당연한 사회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과 다르기 때문에 갑질을 부도덕하고 잘못된 것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세상 살면서 보이지 않게 음으로 양으로 갑질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독교의 역설적인 진리대로 한다면, 성도들의 삶은 진정한 을이 되어야 갑이 된다는 것이다.
세상이 이를 이해하겠는가?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고 했는데, 가난하고 애통한 자는 세상에서는 을이다.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것도 역시 을이다.
약해지는 것도 역시 을이다.
죽고자하는 것도 을이다.
낮아져야 하는 것도 을이다.
비우고 버리고 가난해야 하는 것도 을이다.
종이 되어야 한다거나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도 을이다.
나중이 되고 종이 되어야 하는 것도 분명히 을이다.
오른 뺨을 맞으면 왼쪽뺨까지 내어 주어야 한다면 분명 을이다.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 주고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 내어 주는 것도 을이다.
이렇게 을이 되어야 갑이 된다고 하니 과연 기독교는 역설적인 진리임에 분명하다.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야말로 창조주이고 왕이신 갑이 분명하지만,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을이 되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다시 모든 만물의 왕이 되셨다.
초림으로 오실 때에는 을로 오셨지만, 다시 재림하여 오실 때는 진정한 슈퍼갑이 되셔서 심판주로 오셔서 행한대로 신판하신다.
모든 일술이 예수를 주라 시인하고 모든 무릎이 다 그 앞에 꿇게 될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의 패러독스’이다.
‘십자가의 패러독스’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은 대적들의 핍박과 조롱을 이용해서, 십자가의 진리가 드러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대제사장과 제자장들과 장로들과 로마병정들과 본디오 빌라도의 갑질을 통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그들은 여지없이 갑질을 했다.
예수님은 여지 없는 갑질을 당하셨다.
하나님의 놀랍고 신비적인 역사는 그런 사람들의 모욕적이고 비방적인 갑질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되었고 세상을 구원하는 역설적인 효과를 나타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