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나의 고백(1) 파랑새를 날려 보내라

Author
admin
Date
2016-09-07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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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1) 파랑새를 날려 보내라

옛날, 어느 가난한 집에 소년과 소녀가 살고 있었다.
성탄절 이브날 한 밤중에 방문이 열리고 이웃집 아주머니와 비슷하게 생긴 요술 할머니가 들어왔다.
가난한 나무꾼의 두 아이 틸틸과 미틸은 선물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요술 할머니로부터 어려운 부탁을 받는다.
아픈 손녀를 위해 파랑새를 찾아달라는 요청에 남매는 새장을 들고 파랑새를 밤새 찾아다녔지만, 어렵게 구한 파랑새들은 죽거나 사라져 결국 가져올 수 없었다.
옛날 집을 찾아가 보았지만 거기에도 파랑새는 없었다.
이번에는 밤의 궁정으로 가서 여왕에게 파랑새를 잡으러 왔다고 했지만 거기에도 파랑새는 없었다.
아름다운 꽃동산으로 갔지만 거기에도 파랑새는 없었다.
이번에는 미래의 나라로 가 보았지만 역시 파랑새는 없었다.
지친 남매가 허탈해져 집에 돌아와 잠이 들었다.
아침 햇살을 받고 눈을 떴을 때 새장 안에서 기르던새가 파랑새였음을 깨닫는다.
“오빠, 파랑새는 우리 집에 있잖아.”
“정말이네, 여태 왜 이걸 몰랐을까?”

결국 동화 “파랑새”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행복은 새로운 꿈을 찾아 헤메는 사람에게 있는것이 아니라 그 꿈에서 벗어난 지금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짜 파랑새를 버리고 진짜 파랑새를 가져라”고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파랑새는 집에 있었다’라는 이 간단한 깨닫지 못한다.

뒤돌아보면 한 인생의 비극은 결국 나를 행복하게 해줄 파랑새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삶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리석게도 나는 꿈과 이상을 찾아 다니는 파랑새와 같은 사람이 아니었나 후회해 본다.
결국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파랑새 증후군”은 후회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는 뒤늦게 깨달은 한 목회자의 고백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미국에 와서 신학교를 다니고 안수를 받고 박사학위를 받고 열심히 불철주야 목회에 전념했다.
그러나 한 곳에 머물러 있지 못했다.
파랑새의 꿈을 꾸고 다른 곳으로 부름받아 갔지만 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이제 파랑새를 버렸다.
그래서 이제 작은 교회를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더 큰 목회 더 많은 성도들 더 큰 교회 더 높은 곳을 추구하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던 파랑새의 증후군이 목회의 실패를 가져왔다.
만일 그 곳이 어디든 한 곳에서 집중하고 점념했다면 목회는 성공했을 것이다.
너무 늦은 깨닮음일까?
그러나 앞으로 남은 목회는 이 깨달음과 후회함을 거울삼아 한 곳에서 전념하고 다시는 실패를 거듭하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파랑새는 지금 여기에 있음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부르심의 목적도 부르심의 사명도 부르심의 행복도 이곳이다.
오늘이다.
지금 맡겨진 일이다.
행복이 여기에 있다.

인생의 기회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말할 수 없는 은총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다 한 번 밖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한 번 뿐인 이 황금의 기회 축복의 기회를 망쳐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하면 후회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오늘을 최후의 날로 사는 것이다.
오늘은 마지막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미국의 작가 닐 도널드 월시(Neale Donald Walsch)의 “신과 나눈 이야기”라는 책에 보면, 인간의 놀라운 점은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 버리는 것, 그리하여 결국 현재에도 미래에도 살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래의 이상과 행복도 결국 현재의 모습에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현재 상황을 인정하지 못한 채 이상만을 꿈꾼다면 바로 옆에 있는 파랑새도 알아볼 수 없게 된다.
문제는 파랑새는 언제든 ‘날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성경에 보면 오늘 주어날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사람을 부르시고 쓰셨다.
모세는 나이 80세가 되었을 때 호렙산에서 양떼를 지키는 목동의 일에 충성하고 있을 때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셨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자로 충성스럽게 맡은 일을 다하고 있을 때 그를 모세의 후계자로 부르시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다.
다윗은 8번째 막내 아들로 모든 형들은 일과를 마치고 발을 씻고 하루를 마감했을 때, 그는 밤 늦게까지 아버지의 일에 충성을 다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충성스러운 중심을 보시고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을 부으셨다.
이사야는 조국을 위하여 충성스럽게 기도하고 있었을 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신 여호와께서 그를 선지자로 부르셨다.
엘리사는 쟁기를 잡고 일군들과 함께 밭을 갈며 충성스럽게 맡은 을을 감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아모스는 시골에서 뽕나무 밭에서 맡은 잠업을 하며 현실에 충성할 때 선지자로 부르셨다.
그렇다. 오늘이다.
행복은 오늘 충성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