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성금요일밤의 십자가

Author
admin
Date
2018-03-24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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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요일 밤의 십자가 송영일목사 칼럼
핀란드의 중세기 역사에 한 왕이 있었다. 왕은 나라를 잘 다스렸으므로 백성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왕에게는 커다란 근심 거리가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자기의 뒤를 이을 왕자가 없고 공주만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주의 신랑을 뽑아 왕의 대를 잇게 하려고 전국에 사윗감을 구하는 광고를 냈다. 드디어 공주의 신랑을 뽑는 날이 되자 전국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몰려 왔다. 1차시험은 검술과 말타기와 활쏘기였다. 20명의 건장한 젊은이들이 뽑혔다. 2차시험은 나라를 잘 다스려야 함으로 지혜의 시험문제였다. 왕이 직접 시험 문제를 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는 나무를 구해 오너라. 기간은 열흘을 주겠다.”
그러자 20명의 젊은이들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는 나무를 찾으려고 제각기 길을 떠났다. 그 중에는 수도원에서 고아로 자란 존 페로(John Perot)라는 청년이 있었다. 페로 역시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커다란 나무를 구하려다가 찾지 못한체 수도원 성당에 들어가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현명한 왕이 되어 불쌍하고 버림받은 백성들을 위하여 일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밖으로 막 나오려는데 갑자기 눈에 번쩍 띄는 나무가 보였다. 성전에 걸려 있는 나무 십자가였다.
“그렇다. 바로 나무 십자가다!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고 세상을 연결해 주는 십자가야!”
10일째 되던 날, 청년들은 저마다 웅장하고 괴상한 나무를 짊어지고 왔다. 그런데, 존 페로(John Perot)는 나무 십자가를 지고 왕에게로 나아갔다
"폐하, 십자가의 세로막대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가로막대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위대한 지혜의 상징이라 믿습니다.”
왕은 기뻐하며 존 페로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그는 “십자가 정신”을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페로왕은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위로는 늘 하나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회복하도록 하고, 옆으로는 사람과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가지도록 정치를 하였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왜 하필 십자가에서 피흘려 제물이 되셨을까? 하늘과 땅이 만나는 십자가의 한 가운데에서 대속제물이 되셨다.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해 주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오직 유일한 구원의 길이 십자가의 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끊어진 관계를 이어준 다리가 되었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이어준 다리가 되었다. 왜 하필 예수님께서는 저주의 십자가에 달리셨을까? 십자가형은 지상에서 최고의 극악무도한 행악자에게 내리는 사형이다. 십자가 형벌은 가공할 만한 고통을 준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최극한의 고통을 주는 형벌이다. 그래서 저주의 십자가라고 부른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신 독생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가 되셨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예수님께서 저주의 십자가를 지셨을까?
십자가를 헬라어로 “스타우로스”(σταυρός)라고 하는데 “땅과 하늘로 연결하여 수직으로 세운기둥”이라는 말인데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십자가를 영어로는 “크로스”(Cross)라고 하는데 라틴어의 “크룩스”(crux)에서 나온 말인데, 그 뜻은 하늘과 땅이 교차된 곳이라는 뜻이다. 둘째로, 십자가를 헬라어로 “히스테미”(ἵστημι)라고 하는데 “다 이룬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나무 기둥 위에서 운명하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테 텔레스타이 Τετέλεσται)라고 외치셨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시, 속죄의 사명, 대속의 제물, 구원의 사명을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고 선포하셨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저주받은 곳이라고 비웃었으나 예수님께서는 저주의 십자가 위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받으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저주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비웃고 조롱했으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위에서 우리가 당해야 할 모든 조롱과 비웃음을 대신 당하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수치와 부끄러움이 사라졌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이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대신 지셨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과 허물을 짊어지시고 값을 치러주셨다. 그래서 십자가로 우리를 부르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來)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한자로 올 래(來)자는 “십자가 앞으로 나아오라”(come to the Cross!)는 부르심이다. 올 래(來)자는 양쪽의 두 강도와 가운데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나무에 함께 달린 형국이다. 래(來)자는 십자가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부르신다는 뜻이다.
“十”의 십자가에 중앙에 “人”(사람 인)은 예수님을 상징하고 양옆에 “人人”은 두강도 두 강도를 뜻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편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들을 대신하여 죽으셨다. 그러나 둘 중에 예수님을 구주라고 고백하고 믿는 한 사람만 구원을 받았다. 그 두 강도는 우리 자신들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인을 향하여 “오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이다. 십자가로 “오라”는 음성을 듣고 나아가는 사람에게만 은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십자가로 나아가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오늘도 모든 무거운 짐을 지고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면 쉼을 얻고 싶지 않는가?